수원교구 요당리 성지

수원교구 요당리성지

24호(2008년 11월): 왜 화를 내고 있는가?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08-11-20 14:41 조회 : 3953

제목: 왜 화를 내고 있는가?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위령 성월을 맞이하여 우리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생각하며 하느님 자녀로서의 참된 삶의 길을 묵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우리보다 먼저 가신 조상, 부모, 친척, 형제, 자녀들의 영혼과 성지 후원 회원님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아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열심한 마음으로 기도해 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염려 덕분으로 성지 성전 건축공사와 기타 부속 건물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전의 모습이 첨부된 사진에서 보듯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면서 성지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성전을 바라볼 때마다 얼마 안 있어 저곳에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찬미 찬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다시한번 이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도와주고 계시는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공사가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1. 물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고 나는 화를 내고 있지는 않는가?
개 한 마리가 들판을 지나가다가 먹음직스러운 뼈다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며 얼른 뼈다귀를 집어 물은 개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먹음직스러운 뼈다귀 하나를 물고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 녀석이 내 뼈다귀를 노리는구나. 절대 내 것은 안되지. 아니 저 녀석의 것마저 내 것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라는 생각에 사납게 으르렁대며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입에 물었던 뼈다귀가 깊은 강물로 빠지고,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한번쯤은 들어본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특별히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괴로움과 분노의 원인이 타자나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것, 내 생각, 내 감정, 내 행동이 중요하지 타자의 것, 타자의 생각, 타자의 감정, 타자의 행동은 나를 중심으로 한 주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앞서 들려드린 개의 모습처럼 내 것, 내 생각, 내 감정, 내 행동이 침해당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무섭게 으르렁대며 분노하거나 절망하며 괴로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습이 주변인인 타자에 대한 분노나 절망이 아니라 바로 물에 비쳐진 나를 보고 분노하고 있고, 절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매일의 생활 속에서 주변을 탓하며 어리석음의 수레바퀴를 돌고, 또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신문에 났던 우리의 자화상을 한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한번 나의 모습은 아닌지 묵상해 봤으면 합니다.
“아침 출근 길 사람들의 표정엔 여유가 없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사람의 찌푸린 미간, 아직 선잠을 깬 듯 허공만 응시하는 불쾌한 표정, 툭툭 자신을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까지. 웃는 얼굴, 편안한 미소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그날도 그랬다. 콩나물시루처럼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내에서, ‘프리허그(Free Hug)’ 대회라도 참가하는 듯 누군가의 품에 어깨를 기댄 채 몽롱한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한쪽에서 화가 난 듯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앉았으면 감사한줄 알아야지!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야!” 이에 질세라 퉁명스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줌마 웃기네! 앉아 있는 사람은 찍소리도 못해? 앉아 있는 사람 머리랑 얼굴 툭툭 치면서 신문 넘기는 건 그럼 괜찮다는 거야?” “어디서 젊은 놈이 눈을 부라려! 내가 너 만한 자식이 있어! 너 내려, 이놈아!” 지하철에서 다투는 모습을 본 게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앉아 있으면 감사한줄 알고 입 다물라”는 아주머니의 논리나, “신문 보면서 왜 남의 머리는 툭툭 치냐”는 남자의 속 좁음에 짜증이 팍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내 기분까지 처참하게 망칠 순 없었다. 눈을 감고 쉼 호흡을 했다. 다행히 몇 정거장 안 가 남자가 내렸고, 아주머니는 재빨리 그 자리에 앉아 몇 마디를 중얼중얼 토해내더니 이내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객차 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해졌다. 유독 지하철 내에서 사람들의 인심은 더 각박해진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몸을 부비며 있다 보니 불쾌지수도 그만큼 올라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고함을 치며 다투는 건 다른 사람들의 기분까지 망쳐놓는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조금씩만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2. 죽어야 산다. 크게 버리고 크게 얻자.
“내가 먹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꽉 물었던 뼈다귀를 남을 위해 내려놓았다. 누가 나를 좀 밀더라도 ‘잠깐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을 가졌다. 내리면 바로 계단이 있는 칸으로 이동하고 싶어도 ‘지하철 안은 좁으니 내려서 좀 걷자’라는 생각을 가졌다. 빈자리가 생겨 앉고 싶어도 ‘나보다 더 서 있기 힘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하며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이런 모습으로 물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여유 있고, 흐뭇한 표정을 지닌 행복한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행복한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나에 갇혀진 내가 아니라 타자를 위해 나를 죽인 나의 모습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사도 바오로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3-7).”
그렇습니다. 죽어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크게 버릴 때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가톨릭 전례의 핵심인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며, 그 미사에 참여한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하느님과 내 이웃에게 죽고, 먹히고, 버려지도록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미사에 참례하면서도 내가 죽지 못한다면 여전히 물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즘 우리는 단풍철을 맞이하여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유명 관광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단풍의 아름다움이 또다른 생명을 낳기 위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단풍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너무나 아름답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이 죽어갈 때 아름답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위령성월의 참된 의미는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을 묵상하고, 죽음 뒤에 맞이하게 될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생명을 지향하는 사람들로서 지금 내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여러분들 모두가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우리 주님과 성지 성인들께 두손 모아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