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요당리 성지

수원교구 요당리성지

48호(2010년 11월): 진정한 힘은 부끄럽고 염치를 아는 힘이다

글쓴이 : 요당리성지 날짜 : 10-11-01 11:20 조회 : 3800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일전에 폐암의 고통 때문에 가끔씩 성지에 와서 미사참례 하시고 안수기도를 받고 가시던 자매님이 오셨습니다. 평소의 모습대로 저는 그분에게 기도드리고 주님 안에서 힘을 내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신부님, 요번에 청주 성모 꽃마을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병원에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하느님 안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러 갑니다.” 너무나도 깜짝 놀랐고, 그 자매를 지켜드리지 못했음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저는 주저함 없이 제가 믿고 있고, 확신있게 가르치고 있는 영생의 희망을 그 자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는 나를 영생에로 초대하는 주님의 손길만을 바라보며 마지막의 고통과 두려움을 물리치십시오. 분명 자매님께서는 이 세상의 나그네 살이를 끝내시고 부활하여 주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이 짧지만 확신있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멘.”
이 자매님,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나그네살이와의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계실지, 아니면 이미 이 세상 삶을 끝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멘”이라는 당신의 확고한 믿음위에 주님의 손길만을 바라보셨다면 그분은 죽지 않고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는 우리들, 죽음은 분명 두려운 것이지만 영생의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희망을 노래하는 이번 한달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1. 진정함 힘은 군림하고 빼앗는 힘이 아니라 부끄럽고 염치를 아는 힘이다.

일전에 어떤 자매님이 상담을 청해오셨습니다. 상담의 이유는 한달 전에 구역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반장 자매님들이 “이야기 좀 했으면 합니다”라고 해 놓고는 그동안 자신에게 쌓였던 불만을 토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고, “내가 뭐하러 구역장을 맡아서 이런 이야기까지 듣는가?”라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하느님의 은총이었는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음에는 좀더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들에게 다가가고 구역 일에 봉사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사과의 말로 그 자리를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는 것입니다. 즉 “나를 성토하고, 나를 화나게 하고, 나의 자존심을 건드린 자매들”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모든 일에 화만 나고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참에 신앙을 잠시 쉬자”라는 생각까지 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 자매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정함 힘은 군림하고 빼앗는 힘이 아니라 부끄럽고 염치를 아는 힘입니다. 모든 것을 내 탓이라고 여기고 자꾸만 내려놓을 때 요번 일을 통해 더욱더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자매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내가 당했던 일만을 생각하면서 너희들도 나와 똑같이 당해야 돼. 그리고 내 앞에 모두가 와서 무릎 꿇고 두손 두발로 빌어야만 이 모든 일이 끝난다라는 생각만을 가진다면 결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서 말씀드렸습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물러서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일어서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익숙합니다. 즉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중심을 흔드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즉 군림하고 빼앗아서라도 이러한 삶의 중심을 더욱더 공고히 만들면 만들지 양보하고 이해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은 “하느님 안에서 부끄럽고 염치를 아는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즉 항상 부족하고 죄만스럽다라는 겸손한 자세를 하느님 안에서 가질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전에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대천사 축일미사를 봉헌하면서 신자분들에게 이런 질문과 답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천사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 천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그 힘을 주신 분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겸손되이 깨닫고 늘 그분의 뜻에, 이웃의 미소한 모습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천사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놀라운 영적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힘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됐음을 늘 인식하며 그 힘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그분의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잊어버리고 내 자신의 힘, 능력만을 바라보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느님의 권세에 도전하는 악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습의 끝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세말의 심판 때에 그 힘을 주신 하느님께서 도로 그 힘을 거두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 존재의 사멸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진정함 힘은 군림하고 빼앗는 힘이 아니라 부끄럽고 염치를 아는 힘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하느님 앞에 그리고 이웃의 미소한 모습 앞에 무릎 꿇어야 될 것입니다.

2. 하느님은 주먹 쥔 손에 선한 것을 채워주시지 않는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의 선의를 잃지 말자

요즘 순례를 오시는 신자분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합니다. 그것을 잠시 소개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추석 연휴 첫날 성지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걱정이 돼서 성지 이곳저곳을 점검하던 중에 산책로에 구덩이가 패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장을 사용하여 그 구덩이를 메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전날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빨리 식사를 마치고 성지 이곳저곳을 다시 점검하며 다녔습니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고, 어제 메웠던 구덩이도 별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어저께 메운 곳을 한번 밟아 보았는데 갑자기 쑥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다리가 욱신거렸습니다. 어제보다도 더 큰 구덩이가 생겼고, 욱신거리는 발을 빼냈을 때에는 다리 여기저기에 상채기가 난 것이 보였습니다. 빨리 임시 조치를 취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와 상채기가 난 다리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추석한가위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자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신자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무사히 그 구덩이를 메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작업이 끝나면서 신자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다치길 다행이지 할머니나 할아버지 신자분이 이곳을 지나시다가 다치셨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질문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제가 이런 생각, 이런 이야기 대신에 다친 제 다리만을 쳐다보며 ‘하느님 왜 하필 저에게, 그것도 즐거워야 되고 기뻐해야 될 추석 당일 날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너무 하시는군요’라는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저의 상황은 끝도 보이지 않는 절망이요, 시련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상황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먼저 떠올렸기에 그 상황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처해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삶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주먹 쥔 손에 선한 것을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의 선의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거신 분은 사업적인 어려움으로 가끔 성지에 와서 기도를 받고 가시던 자매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전화를 거셨을 때는 사업이 결국 부도가 나서 채무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셨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거는 순간에도 여차하면 자신의 삶을 끝내버리고자 한손에는 수면제를 들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저에게 전화를 거신 이유는 ‘남이 죽더라도 제가 살아야 되는가?’라는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사업이 부도가 나자 오랜 기간 거래했던 업체의 사장님들이 “여사장, 살아야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여사장에게 지불해야 될 돈은 이 상황이 끝난 다음에 지불할께. 그래야지 여사장도 이 돈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네”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그 당시 감사의 마음을 가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현재 처한 상황도 다른 사람이 고의로 부도를 내서 이렇게 된 상황인데 나만 살겠다고 이런 마음을 먹는다면 저기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도 나 때문에 고통 받을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의 선의를 잃지 않아서. 그래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내가 받을 돈, 아니 나를 살려줄 수 있는 그 돈을 지금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래야지 나중에 빈손이 되어 길거리에 나 앉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또 그런 자매님의 모습에 분명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자매님이 뭐라고 답변하셨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주먹 쥔 손에 선한 것을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의 선의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이 가을, 주님 앞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뉘우침의 눈물을 한방울이라도 흘리는 오늘 하루가 되자

언젠가 모 신문에 이해인 수녀님께서 기고하신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문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며 다시한번 하느님 안에서 부끄럽고 염치를 아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이 가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뉘우침의 눈물 한방울이라도 흘려보자. 입만 열면 남을 비난하고 원망했던 시간들, 무관심 무기력 무감동으로 일상생활을 소홀히 했던 시간들, 무례하고 거친말로 가족 친지에게 상처를 주었던 시간들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가다듬기로 하자. 나날의 삶에서 마주치는 작고 평범한 것들에서부터 평화의 도구가 되고 평화의 길이 될 채비를 하며 은혜로운 가을을 맞자. 거짓 평화가 아닌 참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많이 아파하고 상처받을 준비도 돼 있어야 하리라. 왜냐하면 평화란 끊임없는 회심과 용서, 사랑과 인내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세기를 초월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평화의 사도 성 프란치스코. 그의 기도문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평화의 기도를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외워보며 나도 작지만 쓸모있는 평화의 도구가 되리라 새롭게 다짐해 본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가족 여러분! 교적상 신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저희 성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부족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성지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