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지 타대오 순교자(1819~1869.5.23)
양간 용소말(현재의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출신으로 안중 공소의 인광리(현재의 평택시 현덕면 인광리)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6년 체포되어 1차 배교 후 석방되었으나, 이를 후회하고 순교를 다짐하던 중 1869년에는 피신하라는 주위 권고를 만류하고 포졸들에게 잡혀가서 진위 감옥에 수감, 그곳에서 아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거부하고 수원으로 이송되어 화성 북문 밖에서 1869년 5월 23일 공개 처형을 당했다.

② 림 베드로 순교자(?~병인박해기)
양간 용소말 출신으로 양지 고을 응다라니에 거주하던 중에, 정 안드레아, 림 요한, 림 안토니오, 이중화 등 총 12명의 교우가 함께 피체되어 수원으로 이송되었고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③ 조명오 베드로 순교자(1823~1872.4)
양간 출신으로 1872년 3월 26일에 체포되어 서울 우포청에서 순교했다. (*또는 1871년 4월 홍원여와 함께 우포청에서 순교했다고도 전한다.)

④ 홍원여 가롤로 순교자(1849~1871.4)
양간 출신으로 1871년 23세로 경포에게 피체 그해 4월 서울 우포청에서 조명오와 함께 순교했다.




① 손경서 안드레아 순교자(1799~1839.12.21)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유방제 신부를 도와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1838년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을 때 거짓으로 배교하고 돈을 주어 풀려났다. 1839년 처남인 정화경 안드레아와 함께 앵베르 주교를 양간(상게)로 은신시켰다. 앵베르 주교가 체포된 후 가족들이 체포되자 자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고 1839년 12월 21일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아래의 다섯 순교자는 장주기 요셉의 친척으로 장주기 성인과 그의 육촌으로 순교자인 장 토마스 등이 수원 고을의 양간 느지지 출신인 점으로 보아 이들도 양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록에 명시된 바가 없으므로 향후 좀더 세밀한 고찰을 요한다.

① 장경언(?~1866)
성 장주기 요셉의 재당질(7촌)로, 병인박해기 서울의 포청옥(?)에서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② 장치선(?~1866)
성 장주기 요셉의 조카로 병인박해기에 포청옥(?)에서 5명의 가족이 함께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③ 장한여(?~병인박해기)
성 장주기 요셉의 재종(6촌). 병인박해기에 부인 홍씨와 함께 교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④ 장 요한(?~병인박해기)
성 장주기 요셉의 재당질(7촌)로 아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해서 순교하였다.

⑤ 장 요셉의 숙모(방씨)(?~1869)
성 장주기 요셉의 숙모로 성은 방씨이며 장순성의 모친이다. 1869년 서울 우포청에서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